이레: 선생님은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마음을 움직이는 최초의 경험이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지원: 한 14-15살 때였던 것 같아요. 그때 돌아다니던 청소년 문학 중에서 ‘이대로 환경이 오염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다룬 책을 읽고 ‘으악 큰일이다!!!’라고 생각한 뒤로 환경 문제가 한 번도 머리에서 떨어진 적이 없어요. (이레: 어떤 책이었어요?) 그건 기억이 안 나요. 엄마가 사다 준 과학도서나 여기저기서 얻은 정보에서 온 것 같은데, 저는 책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도 뉴스 기사들만 보면 진짜 자살하고 싶잖아요. 근데 제가 최근에 환경 책들을 좀 되게 많이 봤거든요. 미국에는 환경 관련 르포나 논픽션이 되게 많아요. 그 중에서 에너지 문제를 다룬 <The End of Oil(석유의 종말)>이라는 책을 봤는데, 되게 신기했던 게 저자가 뭐라 그랬냐면 자기는 비관주의와 절망감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지만, 문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야독: 오히려 더 알면 알수록 가능성이 보이는 문제라고 보는 거죠?
지원: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막 자극적으로 “아마존의 삼림이 타고 있어요!” 아니면 “전대미문의 여름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은데, 시스템적으로 파고들고 진짜 깊이 생각해 본 사람들은 오히려 “아직 막을 수 있으니 막아보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런 말을 듣는 게 되게 도움이 되더라구요.
야독: 뉴스 같은 데서는 겁만 주고 대안 제시를 안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알면 알수록 더 절망스러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원: 저도 미디어에서 환경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위기나 종말이라고 프레이밍 하는 게 아니라, 태스크라고 말해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누군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너무 화가 나거든요. ‘어쩌라고?’ 약간 이런 상태가 되는 거 있잖아요. 환경이 그런 얘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진짜로 효능감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지 못하더라도 뭔가 할 수 있는 때를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건 또 다른 일이잖아요. 사람이 중요한 결정을 하는 순간은 매일매일 있지만, 무언가 할 때는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거죠.
아까도 말했지만, 정말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해요. 환경 문제를 통째로 잡아서 “세계 멸망!” 이러면서 밈으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이 부분은 여기까지 막을 수 있고, 저 부분은 저기까지 막을 수 있고’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저도 수업하는 김에 이것저것 읽었는데, 플라스틱 문제는 궁극적으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시스템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냥 돈 때문에 해결이 안 되고 있는 거고. 그리고 그게 있대요. 재활용이 잘 되는 업계들은, 예를 들어서 철강업계 이런 곳은 한 두 그룹에서 독점하고 있어서 그들이 결국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재활용도 되는데, 플라스틱 업계는 작은 회사가 엄청 많아서 문제래요. 서로 규격 같은 게 통일이 안 되는 거죠. 그런 거에서부터 시작해도 훨씬 나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또 조그만 숲을 여기저기 심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거를 통해서 해수면이 낮아지고 지하수가 고갈된 것도 복구하고 생태계도 어느 정도 복구할 수가 있대요. 이렇게 특정한 토픽으로 찾아들어가는 게 희망인 거 같아요.
이레: 구체적인 토픽.
지원: 딱 하나의 토픽. ‘세계가 멸망해가고 있다’ 이러면 그냥 죽고 싶은데,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러면 희망이 생기는 거죠. 그리고 플라스틱 관련 책에 나온 사람의 인터뷰 중에 진짜 인상 깊은 대목이 있었는데, 자기가 정말 현실적이고 경쟁적인 사람이라서 플라스틱 재활용 업계에 뛰어들었다는 거예요. 왜냐면 이건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그게 되게 인상 깊었어요. 그 사람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고 보는 것 같지만 어쨌든 되는 부분도 있다, 이런 느낌?
야독: 저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현실적이고 경쟁적이라서 환경운동에 투신했다.
지원: 너무 멋지지 않아요. 멋있어요. 그 이미지가 환경 운동과 반대잖아요. 저는 근데 진짜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현실주의자라면 이 문제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어요.
또 <The End of Oil>에서 자동차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자동차 자체를 당장 없애라는 게 아니라 연비 규제만 강화해도 기름을 몇십 년 더 쓸 수가 있대요. 미국 같은 데서 규제가 한 번 완화되고 다시 강화가 안 된 게 문제인데, 그러니까 정말 연비 좋은 차를 타는 것부터가 환경을 위하는 제안이라는 거죠. 그런 극단적으로 말하는 방식 있잖아요. ‘숨도 쉬지 마!’ 이런 게 아니라, ‘연비 좋은 차를 탑시다’ 이런 식으로 현실적인 제안을 하는 데서 시작하는 게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영이: 확실히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다, 이런 느낌을 주는 거네요.
지원: 그리고 모든 선택에서 결백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선택들을 내릴 때 이런 걸 고려하면 이만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 약간 이런 거 있잖아요.
야독: 그 전에 저희가 그런 얘기했었거든요. 이 문제가 너무 크고 시공간에 넓게 펼쳐져 있는 데다가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될지 모르는 문제 같다고. 그래서 더 무기력한 것 같다고 했는데 그렇게 잘게 잘게 쪼개서 이것부터 해봐, 라고 하면 안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지원: 그쵸. 그래서 학부 수업에서 레포트 쓸 때도 환경이라고 쓰지 말고 주제를 정해서 쓰라고 해요. 그러니까 숲이 없어지는 문제나 공기 오염이라든가 이러면 훨씬 절망의 레토릭에서 벗어날 수가 있거든요. 저는 주제 중심으로 가는 게 핵심인 것 같아요. ‘다른 건 모르겠지만 나무를 심자’ 이렇게요.
그리고 저는 환경운동가와 연결되어 있는 이미지들을 좀 떼놓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환경운동은 반드시 농부라든가 이런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진짜 여러 방향에서 효율성을 염두에 둔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는 걸 알려주는 거죠.
야독: 그게 저희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딱 환경운동가라는 그런 클리셰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도 할 수 있어. 내가 사는 이 환경에서 할 수 있어.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지금 이 순간에 환경에 대해서 얘기하고 방법을 찾는 거.
지원: 이 안에서 내가 나를 죽이지 않고, 아니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게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 다 같이 ‘자연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완전히 깨끗한 사람이 되려는 게 아니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모든 측면에서 무결할 수는 없고, ‘그런 사람만 환경 운동가다’라고 해버리면 대부분의 사람을 밀어버리는 거잖아요. ‘넌 어차피 (환경)오염하는 사람이야’하고. 이건 시니컬한 거잖아요. 근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면 기여하는 거죠.
야독: 또 그게 공격하는 논리로 자주 쓰이는 것 같아요. 넌 무결해? 이러면서. 니가 그렇게 착해??
지원: 맞아요. 그게 진짜 너무 별로인 게, 이만큼 하든 저만큼 하든 똑같다, 차를 타는 놈은 다 똑같다, 이래버리면 포기하는 거잖아요. 근데 연비가 좋은 차를 타자, 연비가 좋은 차를 탈수록 환경에 좋다, 이렇게 구별을 지어주면 다르게 느껴지죠. 죄와 벌 이런 논리를 벗어나서 효율과 현실주의 차원에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환경주의자가 도덕주의자라는 관념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요. 왜냐면 전 도덕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야독: 현실주의자라는 프레임은 괜찮은 것 같아요. 냉철한 현실주의자.
지원: 맞아요. 논리적이고 냉철한 현실주의자. 이게 사람들을 확 놀라게 하는 게 있죠. “현실주의자니까 환경을 생각해!” 이러면서. 되게 공격에 좋아요. 학생들 중에 잘 설득이 안 되는 애들이 있는데, 뚫고 들어갈 때 되게 좋아요. “나는 실용주의다, 너가 생각하는 게 과연 너한테 좋은가?” 물어보는 거죠. 환경 운동도 결국 자기 좋으려고 하는 건데. 결국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지구를 지키자/아껴주자’같은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진짜 현실적으로 차갑게 얘기해 보자, 이렇게요.
미국에 있을 때, 제가 동양인 여자고 동물 윤리 공부하고 그러니까 제가 되게 센티멘탈한 얘기를 할 거라고 기대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 굉장히 다른 포지션을 잡았어요. “동물들이 이 시스템에 들어가 있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다. 그게 현실이다. 그 다음에 무슨 얘기를 하면 좋을까?” 이렇게 접근하니까 갑자기 애들이 오히려 되게 이상적인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때 이상주의자의 스테레오 타입을 부수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다고 느꼈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좀 듣기 시작하는 느낌? 다들 제가 어떤 동물이 죽을 때마다 엉엉 울고 그런 사람인 줄 아는 거예요.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그걸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죠. 전략적인 것 같아요.
야독: 전 센티멘탈한 게 일단 이 문제를 감각하는 데 되게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이 문제를 다른 사람한테 얘기할 땐 좀 배제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지원: 맞아요. 이게 진짜 말하는 전략이 진짜 중요해요. 그리고 말할 때 화자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야독: 보통 환경 문제 얘기하면 항상 갑분싸되고, 친구들이 딴짓하고, 듣기 싫어하고…그랬거든요.
지원: 그러니까 이게 재미있게, 현실적으로, 그다음에 절망적인 반복이 되지 않게 얘기하는 게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야독: 한국에 밈이 있는데, 그 펀쿨섹좌 아세요? 그 사람이 그랬잖아요. 환경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해야 된다고.
지원: 전 동의해요! (웃음) 맞는 말인 거 같아요. 재밌게 얘기해야 듣지!
야독: 근데 재미있게 얘기 너무 힘든 주제니까 어려운거죠.
지원: 그리고 항상 망했다고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되게 큰 것 같아요. ‘그래, 우리 다 망했어!’ 이걸 반복하면 누가 듣고 싶겠어요? 당연히 아무도 안 듣고 싶죠. 그래서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얘기를 해야 되는 것 같아요. 그냥 우리 다 망했어,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 야 너 차 타고 다니지, 너 차 연비가 왜 그래! 라고 말하는 게 훨씬 낫고. 그러면 생산적인 대화가 될 수도 있잖아요. confrontation(대립)을 해도.
영이: 죄책감을 심어주는 방식은 확실히 아닌 것 같아요.
지원: 맞아요. 우리 다 죄인이오, 하면 뭐가 더 나아져요? 그것도 아니잖아요. 도덕적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청교도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야독: 저는 선생님 일종의 커뮤니케이터의 정체성이 엄청 크신 것 같아요. 연구도 하시지만 이걸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굉장히 많이 관심이 있으신 느낌.
지원: 네. 연구도 사실 저는 뭔가 전달할 자격이 있으려면 연구 실적이 필요하니까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깔끔하게 잘 쓴 게 있으면 읽어보라고 하면 좋으니까. 결국엔 사람한테 닿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 '빛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 ➁'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