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독: 되게 의미 있는 시기였네요. 18~19년이 그런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시기였나봐요.
보림: 그때는 지금까지 하고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그냥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있으니까 한다’였는데. 사실 운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기후 운동과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했어요. 대개 청소년은 미래 세대의 이미지를 가져다 쓰기 좋은 사람들로 여겨졌고, 많이 배제되고 대상화됐어요. 목소리가 왜곡된 거죠.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도 주체로서 여겨지지 않고, 소위 ‘그림 만들기 좋은 도구’처럼 여겨졌어요. 이런 방식 대신에 우리 같은 사람들도 나와서 누구나 변화를 만들 수 있게 될 때 진짜로 변화가 생길 거라는 생각 위에서 조직 체계화가 시작됐던 것 같아요.
영이: 그런 시선이 있잖아요. 청소년들이 뭔가를 한다고 하면 처음에는 일단 ‘기특하네’라는 반응에서 시작해서,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뭔가 계속 행동을 하면 ‘왜 저러는 거지?’하는 의문을 가지고, 나중에는 결국 ‘애들이 뭘 알아!’라는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시선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보림: 사실 저는 청소년으로 함께하지 않았거든요. 청기행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20대였고, 청소년 인권이나 사회 운동에 대해서도 잘 몰랐어요. 나도 뭔가를 같이 하고 있긴 한데 이렇게 오래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이 활동을 하기 전에는 청소년 주체를 대상화하거나 차별하는 것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게 될 거라고 생각을 아예 못했어요. 하지만 20대인 저조차도 청소년으로 범주화돼서 숨 쉬듯이 가스라이팅이 들어오고, 자기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어디 싸가지 없이’, ‘되바라졌다’, 아니면 ‘너네가 우리 도움 없이 운동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줄 아느냐’, 이런 말들을 되게 많이 반복해서 듣게 되었어요.
저는 청소년들의 동료였는데, 그분들은 저를 청소년과 그분들 사이의 연결고리로 생각하시는 거예요. ‘애들 케어 잘 시켜라’, ‘어디 가서 울면 안 된다’, ‘어른들한테 예의 발라야 된다’, 이런 말들을 저한테 쏟아내셨고 그 경험이 생각보다 되게 치명적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되게 안 좋은 경험들이었어요. 트라우마가 남을 정도로.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운동이 되게 필요하다는 걸 느끼는 계기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영이: 비단 외부에서뿐만 아니라 운동사회 안에서도 그런 시선이 있었나요? 같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인데…
야독: 운동 사회 내부에서 그런 가스라이팅이 숨쉬듯이 들어왔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저는 많이 놀랐어요.
보림: 지금도 여전히 그래요. 그래서 오히려 여성 단체나 청소년 인권단체처럼 당사자성과 소수자성, 위계질서와 배제에 대해 성찰하고 고민하는 단체들과 협업이 잘 돼요. 심지어 일반 시민들과 이야기하는 게 더 편할 때도 있구요. 하지만 다른 환경 단체와의 협업에서는 자주 어려움을 느껴요. 저희 단체를 도구화하고 소모적으로 소비하는 느낌을 자주 받아서요.
사실 청기행의 활동이 자주 주목받고 성과가 잘 나오는 편이거든요.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메세지를 조직하고, 저희가 하는 말들이 누구한테 어떻게 가닿을지 매일 고민하기 때문에 다른 단체들에 비해 성과가 좋아요. 근데 협업하자는 제안을 받아서 일을 시작하면, 자꾸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면서 쫓아오고, ‘어른들한테 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면서 그렇게 훈수를 두려고 해요. 다른 환경단체에 있는, 저보다도 나이가 어린 활동가에게는 하지 않는 말들을, 저에게는 ‘청소년’ 기후행동 소속이라는 이유로 하세요. 그래서 사실 어딜 가든 이해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는 대체 누구와 연대해야 하지?”
야독: 같은 목표를 향해서 활동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왜 서로를 차별하고 배척하고 폐쇄적으로 행동하는 걸까요?
현정: 저도 되게 의외였던 게, 사실 저는 운동 사회라고 하는 걸 잘 몰랐고, 이런 일을 제가 하게 될 거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어요. 그냥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들어오게 된 거였는데 그 과정에서 좀 놀랐어요. 왜냐하면 정의와 평등이라는 단어가 항상 발언문에 쓰이고, 맨날 입으로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그 발언대 밑에서 내려와서 우리랑 같이 교류하는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 ‘저 사람 진짜 왜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행동들을 보여주는 걸 보면서, 저희도 그분들을 되게 이해하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저 사람들은 왜 이 운동을 하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운동에 임하고 있을까, 이런 것도 되게 궁금했던 것 같아요.
보림: 사실 환경 운동가 중에는 자신의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저는 그분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어려워 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주로 가치적인 얘기들을 많이 하세요.
이레: 당위적인 얘기들 말씀인가요?
보림: 맞아요. 무엇이 정의롭고, 무엇이 정의롭지 않은지의 당위의 측면에서 말씀하시는 걸 자주 봤어요. 빈민촌에 사는 누군가, 쪽방촌에 사는 누군가에게 정의롭지 않기 때문에 뭐뭐 해야 한다는 식이지, 그게 내 일이기 때문에 뭐뭐 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 분들이 종종 있었어요.
야독: 저희가 제일 궁금했던 게 '청소년 기후행동이 다른 환경단체랑 제일 다른 게 뭘까?'였어요. 왜냐하면 청소년분들만 계시는 게 아니라 성인 분들도 섞여 있으니까 청소년 기후행동만이 가지고 있는 관점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했었거든요.
현정: 저는 그거라고 생각해요. 애초에 청소년은 사회 운동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쓸 수 없는 존재들이잖아요. 저희 활동 처음 시작할 때는 대부분 학교를 다니고 있을 나이대였고, 시간을 많이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근데 기존의 환경단체에는 조직이 있고, 그 조직을 다니는 직장인들이 활동가로 일하는 그런 체계잖아요. 연간 계획과 목표가 있고, 지금 해야 할 일을 항상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저희는 그렇지 않다 보니까 되게 열려 있어야 했어요. 어떤 행사나 캠페인을 기획할 때 사람들이 거기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 조건을 두지 않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되게 큰 방향성이었어요. 그래서 접근성을 고려하는 게 (차별화된 특징으로) 크지 않나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도 저희는 캠페인 진행할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접근성을 확보하는 거거든요. 근데 사실 운동 사회 내부에서는 그게 그렇게 잘 일어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밥을 먹을 때 김밥을 주시는데 계란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 비건 분들 생각 못했다고 하시면서 “계란 빼고 드세요”, 이런 식으로 퉁친다거나, 혹은 휠체어나 수어 통역을 준비해 놓지 않는다거나하는 일들이 되게 많이 일어났었거든요. 그래서 저희 단체가 기존의 운동 방식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창구를 여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야독: 그러면 특정한 조직에 소속된 직장인이란 개념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자율성이 있었고, 누구나 그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식으로 정체성이 확립된 건가요?
현정: 그것도 있고, 사실 청소년이라는 존재가 사실 사회에서 배제되고 차별받은 존재이기도 하잖아요. 저희가 그런 배제나 소외 같은 것들을 많이 겪다 보니까 ‘이래선 안 되지’하는 생각이 생기면서 ‘그럼 우리 말고도 다른 존재들도 같이 해야 한다’라는 데까지 확장됐던 것 같아요.
보림: 정말 그래요. 항상 낮은 사람으로 존재한다라는 걸 저는 진짜 많이 확인하거든요.
이레: ‘낮은 사람’이요?
보림: 우리가 무얼 하든, 쉽게 대해도 되고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하려는 것이죠. 하대해도 되는 사람, 얕잡고 내려치기해도 되는 사람. 당연하게 고려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또는 목소리를 들어준다면 기꺼이 감사를 표해야하는 사람이요. 이건 어린이나 청소년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과도 같아요. 결국 ‘청소년’이나 ‘어린이’라는 건 단지 나이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어디서든 가장 낮고 무시받는 약자라는 정체성인 것 같아요.
야독: 저는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한 게, 어린이 혹은 청소년의 약자성은 ‘시간성’에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제가 어린이였을 때, 청소년 시기에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지금은 기억 안나거든요. 그렇게 누구나 한 번은 겪지만, 시간이 지나서 어른이 되면 자신이 겪었던 것을 잊게 되는 좀 특이한 약자성인거죠. 그런데 청기행 활동가 분들은 여전히 그걸 기억하고 계시고, 또 지금도 계속해서 경험하고 계신거잖아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청소년으로서의 약자성을 끊임없이 겪어내야 하니까 지치실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이레: 맞아요. 성공하는 날보다는 실패하는 날들, 별 성과가 없고 어쩌면 존중받지 못하는 날들을 훨씬 많이 경험하실 것 같은데요. 어떻게 이런 것들을 견디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현정: 그냥 버티는 것 같아요. ‘모두의 기후정치’ 캠페인을 진행하고 나서 대선 결과가 나왔을 때는 번아웃이 세게 와서 그런 무력감을 많이 느꼈어요.
이레: ‘모두의 기후정치’는 대선 후보들의 환경 정책을 비교 분석해서 소개하는 활동이었죠.
현정: 네. 거의 모든 후보들이 그 점에서 미흡하다는 평가를 했었는데, 그 중에서도 환경 관련 정책이 없다시피 했던,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던 후보가 당선되었죠. 사실 전 그때 투표권이 없었어요.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이레: (경악) 그러셨겠네요. 직접 투표를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계속 지켜보시고 관련 캠페인까지 진행하신 거잖아요. 무력감이 정말 심하셨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해서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현정: 제가 안전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에요. 기후위기는 내 일이잖아요. 내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저희(청기행)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제가 안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계속 하고 있어요.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희망 때문에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직은 할 수 있는 게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